성역에 도전하는 미러리스

(이 글에 올라온 사진은 전부 소니가 공개한 a9의 샘플 사진을 원본으로 올렸으며,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다)

캐논과 니콘이 주도하는 전통적인 카메라 시장은 위기를 맞고 있다. 컴팩트 카메라(일명 ‘똑딱이’)는 누구나 가지고 있고, 쓰기 쉽고, 성능도 무시할 수 없게 된 스마트폰 카메라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다.

최상위에 있는 DSLR도 위기이긴 마찬가지다. 최근 미러리스 카메라가 급부상하면서 저가형 시장은 이미 미러리스로 넘어간 상태다. 현재 유일하게 DSLR이 강세를 보이는 곳은 프로 시장. 하지만 미러리스의 혁명을 이끌던 소니는 여기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바로 이번 주에 발표된 a9이다.

 

우리야 장비병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지만, 장비의 성능을 극한으로 활용하는 프로페셔널들에게 장비는 중요하다. (출처: DPreview)

그럼 왜 DSLR은 여전히 프로 시장이 잡고 있을까? 사진 기자들과 같은 프로들에게는 화질도 화질이지만 기계의 신뢰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초점 잡는 속도. 초점의 정확도. 연사 속도. 안정적인 암부 노이즈 성능. 오래가는 배터리. 이런 면에서는 아직도 DSLR이 최강이었다. 이런 부분은 특히 스포츠 경기나 공연 등을 촬영하다 보면 느끼게 된다.

Sony A9 + FE 100-400mm f/4.5-5.6 GM OSS @ 400mm, 1/1000, f/5.6, ISO 200

그동안 소니가 시도를 안 한 건 아니다. 일단, 미러리스 카메라는 화질과 암부 노이즈에서 유리한 풀프레임 센서를 가질 수 없다는 편견(?)을 최초의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인 a7 시리즈로 깨버렸다. 이도 모자라 2015년에는 당시에 웬만한 DSLR보다도 높은 4,200만 화소짜리 a7RII를 내놓기도 했다. 그리고 신뢰성 면에서는 (소니의 주장에 따르면) 렌즈 교환식 카메라 중 가장 빠른 초점 속도와 초당 11 프레임 연사 성능을 지닌 a6500을 내놓기도 했다. 2주 전에 공연 촬영을 위해 a6500을 빌린 적이 있는데, 어두운 곳에서 초점의 정확도가 떨어지는 문제는 여전히 존재했지만 그동안 미러리스의 발전은 실로 놀랍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Sony A9 + FE 70-200mm f/2.8 GM OSS @ 170mm, 1/3200, f/2.8, ISO 200

 

a9은 그동안 소니의 다양한 시도들이 맺은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일단 센서는 2,420만 화소의 풀프레임 센서. a7RII의 4,200만 화소와 비교하면 적게 보이지만, 사실 프로페셔널용이라고 하는 DSLR 카메라 기종인 니콘의 D5(2,080만 화소)나 캐논의 1Dx 마크 2(2,020만 화소) 보다 높다. 화소 수가 높으면 그만큼 이미지를 전송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일부러 화소 수를 줄이는 것이다.

Sony A9 + FE 70-200mm f/2.8 GM OSS @ 200mm, 1/1250, f/3.5, ISO 2000

하지만 a9이 이 중에서 가장 높은 화소 수를 가지고 있으면서 초당 20프레임이라는 엄청난 연사 속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센서 디자인 덕분이다. 센서에 DRAM 메모리를 직접 내장하는 적층 설계(Stacked design)를 통해 a7II에 들어간 비슷한 화소 수의 기존 센서와 비교해 최대 20배의 더 빠른 이미지 전송 속도를 자랑한다. 거기에 센서 전역에 분포된 693개의 초점 포인트를 이용해 초당 60회의 초점 분석이 가능해 초당 20 프레임의 속도로 연사를 찍으면서 계속해서 초점을 다시 잡아낼 수 있다. DSLR에서는 꿈도 꾸기 힘든 엄청난 계산 능력이다.

Sony A9 + FE 70-200mm f/2.8 GM OSS @ 200mm, 1/2500, f/5.6, ISO 200

거기에 소니는 기존에 미러리스가 프로 시장에 적용되기에는 가지고 있었던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이 중 특히 배터리가 주목할 만하다. 여태까지의 소니 미러리스 카메라들은 배터리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캐주얼하게 찍는다면 큰 문제는 되지 않겠지만(최소한 내가 a7을 사용할 때는 그랬다), 취재 같은 상황에서는 배터리 하나로는 버티기가 어렵다. 지난번에 a6500으로 공연 취재를 했을 때에도 외장 배터리의 힘을 빌리고 나서야 겨우 두 시간 동안의 취재를 마칠 수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니는 a9에 기존 a7 시리즈의 2.2배 용량의 배터리를 탑재했다. 거기에 배터리 두 개를 넣을 수 있는 세로 그립과 배터리 두 개를 동시에 충전할 수 있는 외장형 충전기도 별매한다고 한다. 확실히 a7 시리즈보다는 배터리 면에서는 유리할 것이 자명해 보인다. (미리 카메라를 만져본 사람의 말에 따르면, 3,500장의 사진과 45분의 4K 영상을 찍고 5% 정도의 배터리가 남았다고 한다) 이 외에도 듀얼 SD 카드 슬롯과 FTP 전송을 위한 이더넷 단자 등, 프로들을 위해 신경 쓴 부분이 상당히 많다.

Sony A9 + FE 100-400mm f/4.5-5.6 GM OSS @ 232mm, 1/800, f/5.6, ISO 3200

그렇다면, 과연 a9는 DSLR에서 움직이지 않았던 프로들을 움직이게 할까? 쉽지는 않을 거다. 프로들은 물론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습관의 동물이다.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는 시간 동안 자신의 워크플로우가 방해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카메라 시스템으로 갈아탄다는 것은 상당히 많은 위험요소를 감안하게 된다. 물론 a9이 미국 가격 기준으로는 캐논 1Dx 마크 2나 니콘 D5보다 1,500달러 정도 저렴하긴 하나, 이미 지난 올림픽 시즌에 이러한 카메라들을 마련했을 프로들(보통 프레스 기종은 올림픽 시즌을 앞두고 모델 체인지가 된다)에게는 굳이 지금 쓰는 장비를 버리고 a9로 갈아탈 이유는 없을 거다. 물론, 그나마 E마운트가 다양한 어댑터를 활용해 기존의 렌즈 활용은 쉽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 프로들이 갑자기 캐논과 니콘을 버릴 일은 없을 거다. 그러나, a9는 일종의 선언이다. DSLR이 센서나 영상 촬영 기능의 발전을 제외하고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있던 동안, 미러리스는 엄청난 속도로 발전해왔다. 그리고, 이제 정말로 DSLR의 기계적 성능을 앞서는 순간이 코앞이다. 이미 a9가 앞섰을지도 모른다. 물론 써봐야 알겠지만

a9는 사실상 DSLR의 영역이었던 프로 시장이라는 성역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미러리스 카메라인 셈이다.

P.S) 소니 a9과 같이 나온 100-400mm GM 렌즈의 소식을 트위터에 공유했을 때, “아이돌 덕질에 최강의 카메라다”라는 반응이 많이 보였었다. 최소한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쪽에서 새로운 시장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