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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배민인가(부제:수습 2개월 차에 부쳐)

February 28, 2019

왜 배민인가(부제:수습 2개월 차에 부쳐)

1월의 첫 번째 월요일에 우아한형제들에 입사해 벌써 2월의 마지막 날이다. 중간에 설 명절도 껴있고, 2월은 원래가 짧은지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냈다. 3월에는 수습종료 인터뷰를 할 테고, 정직원으로 최종합격해야 하는 절차가 있으니 지금이 아니면 쓰기 어려운 꼭지로 글을 써본다.

왜 떠났나

어느덧 9년 차지만, 이직은 8번…. 매년8번… 매년 이직했다 해도 될 만큼 프로이직러에 가깝지만, 자의보단 타의에 의한 이직이 많았기에 늘 고민보다 타이밍이 더 앞섰었다. 퇴사는 늘 갑작스러워서 회사를 고른다는 건 사치였고, 포지션이 열려있는 대로 지원하는 대로 합격하는 대로 입사하는 대로 그렇게 물 흘러가듯 이 시장에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회사에서 또 정리되면서, 월급쟁이 자체에 회의감이 들었다. 맨날 짤리는 회사 열심히 다녀서 뭐하나 싶어 과감히 프리랜서를 시도해봤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미없더라. 자유를 뛰느니 다시 또 아무 회사나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어버리기나 하고. 그 와중에도 관심 하나도 없었던 야놀자에 입사하게 만든 건 당시 R&D 그룹장이었던 김진중(골빈해커) 님의 집요한 이력서 삥뜯기때문이었고, 일단 붙고 나서 고민하라는 말에 아 몰라 알아서 하세요 하고 던진 이력서 때문이었다.

생각 없이 지원을 하긴 했지만, 지난 회사들과는 달리 야놀자에 들어가고 나서는 남들이 알만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자3년을 다니자 의 두 가지 약속을 했다. 이전에 만들었던 서비스들은 대부분 종료되어서 보여줄 만한 것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객관적 증빙이 어려웠고, 잦은 이직 경험은 사회 부적응자가 아니냐는 질문으로 돌아와 속상했기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기획과 개발의 레거시와 부대끼며 애증의 관계가 두터워질수록 쓸만한 앱이 아니라, 쓸 수밖에 없는 앱을 만들어서 퇴사를 해도 욕하면서 켜게 되는 앱을 만들자라는 세 번째 약속을 했다.

나는 앱 PO를 맡게 되었고. 커리어에는 야놀자 앱이라는 포트폴리오가 채워졌고. 프로젝트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쓸만한 앱이 되어갔고. 회사는 매달 성장했고. 드디어 약속의 3년째에 접어들었고! 앞으로도 해야 될 일은 많았지만, 내가 떠날 날이 다가온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며,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대하여 끊임없이 되물었고, 회사 동료들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많이 했던것 같다. 내가 여기에 남고 싶은 4번째 약속을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다시 돌이켜봐도 야놀자만큼 열심히 다닌 회사는 없었다. 치열하게 일했고, 불꽃같이 타올랐다. 원래가 워커홀릭이었으니, 물 만난 고기처럼 작은 이슈 하나라도 의미 있었고, 보람으로 남았다. 나에게 맞춘 팀이라고 생각할 만큼 나와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해주는 멋지고 멋진 사람들이 있었다. 정말로 퇴사를 결심하기까지에는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처음 나와 했던 약속 3가지를 모두 지켰다고 생각했을 때는, 결국 4번째 약속을 찾지 못했다.

고민 끝에 이직은 처음이라

지난 10년은 마음 가는 대로, 꽂히는 대로 걸어왔다고 한다면 앞으로의 10년은 이번 이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렸다고 생각했다. 일단 퇴사를 마음먹었으니, 이직할 곳을 찾기로 했다. 후…대출 받지 마세요. 퇴사해도 놀지도 못하고 이게 사는 건가 3개월 정도 링크드인을 구직상태로 열어두고, HR 담당자들과 리크루트 담당자들에게 회사소개를 받고, 궁금한 걸 질답하는 기간을 충분히 가졌다. 그러면서 평소에 일해보자 제안받은 곳에는 미팅 미팅콜을 먼저 보냈다.

이번 이직 준비의 특징은 어떤 구직 사이트도 이용하지 않았다는 거다. 왜냐면 나는 의외로 가고 싶은 회사가 없고, 하고 싶은 서비스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스트레스 없는 회사 밖에서 하는 편이라, 블랙 기업이 아닌 누구나 다닐만한 회사이고, 회사생활 자체가 재미있다면 내가 다루는 서비스가 뭐든 크게 상관이 없다. 그저 업무를 업무로만 대하는 프로페셔널리즘에 취해 일하는 편이다.

또 어디를 가나 업무는 서비스 기획일 테니 뭘 기획해도 별 차이 못 느낄 거고, 개발자가 아니라 직전 연봉% 로 협상할 테니 ‘파격대우!’에는 해당 사항이 없을 거고, 복지야 뭐 누리기 나름이고…. 그래서 흔한 구직정보에는 어떤 매력도 못 느낀다. 꾸준한 설득이나 강력한 한방이 있는 게 아니라면 관심이 쉽게 가지 않았다.

하여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채용 프로세스를 모두 끝내고 최종 합격 결과가 나오기 전에 꽤 긴 시간을 기다리며 커리어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됐다. 사실 기획자는 도메인 지식기반을 흡수하기에 따라 다른 기획자로 구분된다. 서비스 기획의 앞단은 사용자가 있지만, 그 뒤를 받치는 힘은 전혀 다른 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Exit 전략을 세우는 기준은 나는 어떤 기획자가 되고 싶은가 였다. 기술을 잘 이해하는? 사용자를 잘 이해하는? 데이터를 잘 이해하는? 사업을 잘 이해하는? 물론 면접은 왜 그따위로 봤는가에 대한 자아 성찰의 시간도 됐다. 그리고 어디를 가도 이번엔 최소 5년은 다녀야지 약속했다.

왜 배민인가

내가 최종 지원했던 곳은 AI를 이용해 서비스를 만드는 대기업(굳이 말안해도 다 아는 그 초록회사)과 배달의 민족을 서비스하는 우아한형제들이었다.

그동안 앱 개발을 지원하는 앱 기획을 맡아왔으니, 당연히 앱 서비스 기획 포지션으로 평가될 거라 생각했는데 대기업은 인공지능 엔진을 이용한 서비스를, 우형에서는 업주들이 구매할 수 있는 B2B 광고상품을 만드는 조직에 대해 지원하게 된 것이다. 면접에서 털렸다는 소리를 참 고상하게도 한다.

하지만 두 곳 모두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다루어야 했고, 그 방향은 완전 기술 쪽으로 흐르거나, 완전 사업 쪽으로 흘렀다.
기술을 이해한 만큼 서비스로 녹이는 것과 사업을 이해한 만큼 서비스로 녹이는 것은 어떤 도메인에 있던지 서로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그래서 내 선택의 기준은 대기업이냐 스타트업이냐가 아니라, Tech+Tech가 되는 것과 Tech+Biz가 되는 것 사이에서의 고민이었다.

사실, 개발이나 기술, 로직 적으로 파고드는 것도 기획자는 가기 어려운 길이고 사업을 이해하고 매출을 끌어올리는 것도 기획자로서 가기 어려운 일이다. 기술이나 사업이나 앞으로의 10년을 위해 공부하는 데에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을 선택하든 또 다른 고생길이 예약돼있다.

결국, 양쪽에서 이것저것 주워 먹기 좋아하는 제네럴리스트로서 어느 쪽 길을 걸을지의 고민은 결국 시장에서 수요가 높은 커리어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5년 뒤 Exit 한다고 생각했을 때, 개발을 잘 아는 기획자보다 개발도, 사업도 잘 아는 기획자를 원하는 수요가 더 클 거라 생각했다. 희소성은 기술/개발을 잘 아는 기획자겠지만, 시장가는 결국 수요와 공급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니. 그래서 배민이었다. 뭐 여기서 AI 한다고 하면 또 발 담가보고 머신러닝 한다고 하면 발 담가보고 하지 뭐~

지금에 와서 이야기하건, 그 초록 회사는 연말에 채용이 중단되어서 최종 불합격을 받았다. 또 지금에 와서 이야기하건대, 앱 기획 포지션이었다면 아마 최종적으로 입사를 고사했을지도 모르겠다. 한 4년쯤 전에 우형 지원했을 땐 1차 면접에서 떨어졌거든! 흥!

타이밍은 늘 중요하지. 인생 참.

덧. 그래서 배민 좋냐고? 정직원통과하면 2편으로 올리겠다.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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