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로고를 깎던 공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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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무뚝뚝한 공대생이었다. 뻘짓인 것 같은데 뭐라 말하진 못하고 잘 깎아나 보라고만 말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그려보고 저리 바꿔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What do I stand for?”
초기의 주 컨셉은 음표와 스피커의 형상을 응용한 것이었다. 좀 더 미니멀하게 표현하고자 다양한 시도를 해봤으나 영 시원찮았다. 단순한 외형적 상징만을 담아서 그런지 만드는 데 들인 철학은 깊지 않았고 그만큼 애정도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 라는 존재에 대한 키워드를 뽑아보는 데 주력했다. 중요하게 여기는 핵심 가치를 키워드 중심으로 목록을 뽑은 후 하나씩 지워나갔다. 그렇게 3개의 핵심 키워드를 결정했다.
- World(세상)
- Harmony(조화)
- Connecting(이음)
첫번째 시도
단순히 시각적으로 얼마나 아름답거나 감각적인지에 대한 조형미가 중심이기보다는 로고가 담고 있는 의미와 철학이 중심이기를 바랐다.
문제를 되돌아보니 방향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담고자 했던 가치가 3개나 되었고 추상적이기까지 하여 가장 담고싶은 핵심 가치가 하나로 귀결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로고의 사용이 점점 머뭇거려졌다. 고치고는 싶은데 스케치는 산으로 가기 시작했고 결국 백지에서 다시 출발하여 스케치를 시도했다.
두번째 시도
이번에는 접근을 조금 달리했다. 내 이름에 대한 해석과 의미를 담고자 시도한 것이다. 우선 이름이 지어질 때 가장 먼저 고려되었을 한자의 뜻을 담기 위해 고민했다. 내 이름은 한자로 빛날 희(熙), 빛날 찬(燦)이니 무언가 빛을 발하는 대상을 형상화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번째로는 내 한글의 형태에 집중했다. 희찬의 찬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자음인 치읓을 강조하고 싶었다. 치읓의 형태와 빛나는 무언가를 고민하니 ‘별’이 떠올랐다. 그러나 공격적으로 보일 수 있는 뾰족함은 없애고 싶었기에 라인을 되도록 둥글게 잡았다. 내 외모 또한 날카롭다기보단 둥근 편이니까.
세번째 시도
…그리고 현재


개인 브랜딩(Personal Branding)으로 제대로 쓸 로고를 염두하여 다시 만들었다. 초창기에 고집했던 디자인과 철학3을 일부 다시 가져왔으며, 그 안에서 공대의 느낌을 살려보고자 했다. 동시에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과 도구적 느낌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자 알파벳 C와 렌치의 모양을 살린 형태로 가닥이 잡혔다. 둥근 형태는 세상을, 가운데 정육각형과 육각렌치 형태는 완벽의 추구와 엔지니어가 되고자 하는 행동을, C의 형태는 CHANN과 Code를 상징한다. 꿈보다 해몽인 느낌이 강하지만 그래도 이전까지의 로고보다는 나은 느낌이다. 여태까지 삽질해 온 시도의 배경이 전반적으로 조금씩 녹아들은 것 같아 약간은 정이 간다. 기름칠하고 조이듯 로고를 뽑아낸 것도 마음에 든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인데, 이미 기존에 비슷한 형태의 로고4가 있었다. 미니멀한 로고를 추구하다보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미니멀하면서도 유니크하긴 조금 힘든 법이니까. 살짝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잘 나가는 스타트업의 로고와 닮았으니 내 로고 또한 조금은 검증된, 괜찮은 로고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어쩌면 거의 똑같이 생긴 로고도 있을수도 있다. 그래도 일단은 이번 로고를 길게 사용해 볼 생각이다.
마무리
유실된 자료로 인해 싣지 못한 과정과 스케치도 있는데, 어쨌건 나름 치열하게 고민을 해봤다는 걸 기록해놓고 싶었다.
디자인 전공자가 아닌 일개 공대생이다보니 아무래도 전공자의 눈에는 소꿉장난으로 보일 수 있다. 조금은 장난같은 글이었지만, 공대생의 디자인적 사고의 흐름을 적어봤다는 점에서 작은 흥미라도 느껴졌으면 한다. 그런 게 있을리가.


